Focus
찢어져도, 베여도 스스로 회복하는 웨어러블 반도체 소자 개발
2024-05-17 연구/산학
화학공학과 오진영 교수 연구팀, 스탠포드 대학과 공동연구 진행
48시간 내 상처 및 전기적 특성 회복하는 트랜지스터 개발
우리 인체의 피부처럼 늘어나고, 상처가 나도 스스로 치유되는 전자기기가 개발됐다. 화학공학과 오진영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자가 치유 기능을 가진 신축성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전자피부 분야의 선구자인 스탠포드 대학의 제난바오(Zhenan Bao) 교수와 국제 공동연구로 진행됐다. 연구 결과는 기술의 학술적 성취를 인정받아 <Nature Communication(IF=16.6)>에 최근 게재됐다.
난제였던 트랜지스터화 소재 원천 기술 개발
과거에 자가 치유 반도체에 대한 연구 성과가 보고된 적은 있지만, 트랜지스터를 구성하는 모든 전자 소재(전도체, 반도체, 부도체)가 손상 시 소자 내에서 동시에 자가 치유될 수 있는 소재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오진영 교수는 “부품별 치유 기술은 개발됐지만, 이를 통합해 트랜지스터화하는 소재 기술이 난제였다”고 설명했다.
오진영 교수 연구팀은 자가 치유 탄성체(부도체)를 기반으로 고분자 반도체 나노웹 형성 기술(반도체)과 금속원자와의 나노컴포짓 기술(전도체)을 개발해 늘어나면서도 상처가 나면 후처리 없이 스스로 치유되는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및 이를 활용한 반도체 논리회로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연구팀은 자가 치유 특성을 시험하기 위해 트랜지스터를 수술용 칼로 절단한 후, 자가 치유 고분자 소재의 점탄성 거동을 이용해 스스로 상처 부위를 접합시켜 원래의 형태로 복원시켰다. 상처 회복에는 별도의 후처리 없이 48시간이 소요됐다. 회복 과정에서 반도체와 부도체의 전극 층이 정확히 재결합해 전기적 특성이 90% 이상 복원됐다.
전자피부 개발 핵심 소재, 국제 연구 교류 활성화 희망
개발한 기술은 전자피부 개발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진영 교수는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신축성과 자가 치유 능력을 갖춰 피부 부착형 웨어러블 기기인 전자피부의 핵심 소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체 내 줄기세포가 다양한 조직으로 분화되듯 자가 치유 트랜지스터 또한 전자피부에 필요한 모든 구성 요소 개발의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전자피부 분야의 석학인 제난바오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됐다. 오진영 교수는 “전자피부 분야의 최전선인 미국에서도 이루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경희 재학생 역량이 돋보인 사례”라며 “대학원생 연구원 파견 등 국제 연구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연구팀은 단순한 트랜지스터를 넘어 인체와 융합하는 전자 피부 시스템 개발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그리고 경기도(GRRC)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글 김율립 yulrip@khu.ac.kr
사진 정병성 pr@khu.ac.kr
ⓒ 경희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 communicati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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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인류학의 기후 실천 몸이 기후다 몸이 기후위기를 만들고, 바로 그 몸이 위기의 기후를 앓는다! 존재론적 인류학, 신유물론, 동아시아 사유의 관점에서 인류학자가 ‘불편하게 하기’의 방식으로 말하는 인류세의 기후위기 김태우 지음 | 140×210 | 243쪽 | 무선 | 18,000원 2024년 11월 15일 | ISBN 978-89-8222-779-0 (03300) 존재론적 전환과 동아시아 사유의 연결을 통해 기후위기를 바라본 최초의 책. 『몸이 기후다』는 기후위기를 야기한 분리분절의 생각(인간-자연 이원론 같은)이 우리의 일상적 말과 행동에 관철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자연, 환경, 기후, 탄소, 기온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과, 그에 연결된 실천들에 이미 들어와 있는 기후위기의 문제를 말한다. 이 책은 멀리 가지 않고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기후위기를 이야기한다. 인류학의 시선으로 기후위기를 바라보며, 기후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의 방식, 몸과 기후의 관계,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모색한다. 장기간 몸과 의료에 대한 현장연구를 진행해온 인류학자인 김태우 경희대학교 교수는 존재론적 인류학과 연결하여, 기후위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몸에서 찾는다.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행위자이면서 그 기후위기가 몸의 위기로 드러나는 바로 그 몸에서 희망을 찾는다. 출판사 리뷰 “기후위기는 말의 문제다” 말의 기저에 놓여 있는 생각의 틀의 문제다 기후 문제의 아이러니는 하나둘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가속화되는데, 그에 대한 응대는 너무 느리다.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기후 문제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 기후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기후위기라는 용어는 벌써 식상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몸이 기후다』의 저자인 인류학자 김태우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교수는 말의 문제에서 시작해보자고 말한다. 친환경 제품, 친환경 건물, 친환경 에너지…. 친환경을 일상적으로 말하고 실천하지만 ‘환경’이라는 말에 내재한 생각의 방식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친환경은 계속해서 인간과 환경의 거리두기의 지속일 수밖에 없다. ‘둘러싼 경계’라는 ‘환경’의 의미에서부터 환경은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각한 환경문제에도 여전히 ‘환경’은 주변화되어 있다. “환경”이라는 말에 관철되어 있는 분리의 틀은 단지 말로 머물지 않고, 행동을 추동하고 그리하여 그 분리를 실재로 만든다. ‘자연보호’에도 자연과 인간 사이 경계선은 분명하다. 저자는 존재론적 인류학과 신유물론의 논의들이 강조하는 말의 물질성을, 기후 관련 언어들과 연결시키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에 내재한 기후위기의 기반을 드러내 보이고, 그에 대한 흔들기를 시도한다. 저자는 번역어인 환경, 자연이 서구로부터 유입되어 개항기 동아시아에서 자리 잡은 시기부터, 그 말들이 도시, 위생 등 분리의 틀을 가진 여타의 번역어들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분리를 실제화하는 역사의 장면에 주목한다. 분리의 경험으로 당도하는 동아시아의 근대를 짚으면서, 거기서부터 인류세의 기후위기를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인류세는 쓰레기의 시대” 탄소, 핵폐기물, 플라스틱… 자연의 분해·흡수 순환고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증명하는 시대 난해해 보이지만, 인류세는 어렵게 이해될 필요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세의 본질은 그것이 쓰레기의 시대라는 것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대기에 이산화탄소로, 지표에 핵폐기물로, 바다에 부유하는 플라스틱으로 분해·흡수되지 못하는 시대가 바로 인류세이다. 지구의 역사에 1.5도 상승이라는 기록을 쓰레기로 기입하고 있는 시대가 인류세인 것이다. 지구의 기온을 들어 올릴 정도의 엄청난 쓰레기는 인간의 ‘쓰고버림주의’가 만들었다. 그리고 쓰고버림주의는 대다수의 인류에게 버릴 결심을 하게 하는 근현대문명과 그 문명의 전 지구화가 만들었다. 저자는 그리하여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가 아니라, ‘당신이 배출하는 것이 당신이다’를 내세운다. 인간화된 ‘먹기’가 아니라, 인간 바깥 존재들과의 연루를 직시할 수 있는 ‘배출’을 통해 인류세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김태우 경희대학교 교수는 몸과 의료에 관한 장기간의 현지 조사를 통해 몸을 규정하는 시선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며, 우리는 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을 논의해왔다. 김태우 교수는 이 책에서 몸기후, 기후몸에 대한 논의를 통해 지구사와 인류사가 일상적으로 얽혀 있음을, 기후재난의 시대에 이 얽힘이 더 깊이 휘말리고 있음을 강조한다. 지금의 기후위기를 존재론적 인류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기후를 대하는 우리 생각의 방식의 문제를 조명하고 그 너머를 모색한다. “기후위기는 몸의 위기” 몸이 배출하는 엄청난 온실가스가 만든 기후위기가 다시 몸을 위기로 내모는 지금의 상황에서, 분리의 체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결의 실마리로서 바로 그 몸에 주목하다 저자는 분리분절의 체계를 넘어서기 위한 관계의 장으로 몸과 기후의 연결성에 주목한다. 먹고, 입고, 이동하고, 기거하며, 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기후위기를 만든다. 기후위기는 다시 건강의 위기, 실존적 위기를 직면하게 한다. 이 몸-기후-몸의 연결에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성을 재고할 수 있고, 바로 그 연결의 장에서 다시 다른 관계를 모색하는 작업은 기후위기 너머를 위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음을 논의한다. 저자는 존재론적 인류학, 신유물론, 동아시아 사유를 오가며 기후위기를 야기한 생각의 방식을 넘어설 수 있는 탈기후위기 시대의 사유를 모색한다. 인트라-액션, 상응, 복수의 자연, 인류탄소, 사회기온상승 등, 전에 없던 말들을 제시하며 그 말들의 기저에 있는 생각의 틀과 기존의 언어들에 내재한 생각의 방식을 대면시키면서, 새로운 말과 사유, 그와 연결된 기후행동들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차례 추천의 글 들어가며: 몸, 얽힘, 기후 1장 ‘환경,’ 몸-기후, 불편함의 인류학 벨리즈의 조각 잠 인류학, 팔 할이 불편함 말뿐이지 않은 말 ‘환경’의 반환경주의 몸과 말의 경계를 넘어 존재론적 인류학과 비근대적 사유 2장 기후위기 생략하기 탄소집착 문명 인류세, 쓰레기의 시대 쓰레기가 말하는 시대 지구비등화 기후변화의 치외법권지 지나가는 기후위기 지구에 땅 부쳐 먹는 인간 인트라-액션과 상응 말 안 되는 시대에 소환되는 말들 응함이라는 실재 3장 자연은 하나가 아니다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특별한 동음이의어 번역이 아니다 ‘자연(nature)’의 탄생 순수한 자연은 없다 연결되어 있는 자연 ‘도시’라는 말과 물질 변화하는 자연 자연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4장 연결의 기후 기후의 의미 기후의 조건 탄소, 기온 집중 섭씨 1.5도의 무게 연결의 기후위기 사회기후재난, 복합명사가 필요한 시대 인류세의 기후는 여름 ‘선진국’은 없다 5장 몸의 기후, 기후의 몸 기후라는 연대의 힘, 그 힘을 흔드는 위기 고기 좀 먹어본 사람들이 되다 중심의 인간과 대상 ‘몸’이라는 거멀못 당신이 배출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기후의 몸 취약한 방벽들 기후위기, 몸의 위기 몸-기후 얽힘 관계를 앞에 둘 때 기후위기 시대의 중의법 나가며: 쓰레기통 앞에서 머뭇거리기 참고문헌 지은이_ 김태우 인류학자. 정치문화철학과 의료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의료에 내재한 사유방식에 대한 관심은, 최근 존재론적 인류학과 만나면서 다시 기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의료, 아시아의 근대성을 읽는 창』(공저), 『아프면 보이는 것들: 한국 사회의 아픔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공저), 『한의원의 인류학: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불순의 철학: 얽힘-교차와 상관작용의 동아시아 존재론」, 「치유로서의 인간-식물 관계: 존재론적 인류학으로 다시 읽는 동아시아 본초론」, “Cultivating Medical Intentionality: The Phenomenology of Diagnostic Virtuosity in East Asian Medicine,” “Experiences, Expressions, and Boundary-Crossings: East Asian Tactile Diagnostics in South Korea”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기후-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의과대학에서 인문사회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추천의 글 알고 있던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실이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몸의 위기로 여긴다. 지구가 아프면 내 몸이 아프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동해야 한다. 이 책을 읽게 되면 기후와 몸의 연결 속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바라보고 기후위기 극복을 몸으로 실천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_조천호(대기과학자,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인류세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행성적인 것(the planetary)과 지역적인 것(the local)의 연결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시스템의 변화가 추상적 ‘인류’가 아닌 한 지역에 사는 개인 및 집단과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행동과 국가의 정책은 지구시스템 변화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줄까? 이 책은 동아시아에서 인류세를 바라보는 혜안을 제공한다. 그 출발점으로 ‘말’과 ‘몸’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자연,’ ‘환경,’ ‘기후’ 등 서양 개념을 번역하여 익숙하게 쓰는 말에 스며든 인간 중심적이고 이분법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한다.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말고 불편함을 감수할 때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의료인류학과 지구인류학이 만나는 지점을 새롭게 개척한 작업의 결과다. 인류세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말에 식상하고 지친 대중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_박범순(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인류세연구센터장) 몸과 기후는 멀고도 가까운 관계다. 하나였다가 분리된 관계다. 이 책은 서구의 포스트휴머니즘 철학과 동양적 세계관 그리고 인류세 담론을 능숙하게 오가며 주류 기후위기 담론의 문제를 혁파한다. 맨 처음엔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는 이 책의 제목은 읽으면서 점차 확신으로 다가올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뒤, 나는 사람과 자연 모두에게 묻기 시작했다. 당신의 기후 안녕하십니까? _남종영(환경 저널리스트,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동물권력』 저자) 책 속으로 친환경 실천은 중요하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이 폄하될 수는 없다. 하지만 친환경이 어떠한 인간과 환경 관계의 맥락 속에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한 고찰이 없을 때 ‘친환경’은 인간중심주의를 고착화하는, 오히려 ‘친인간’의 실천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인간과 환경, 인간과 자연을 떼어놓고 보는 생각과 행동으로 지금의 기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31쪽 다른 생각의 방식들이 있다는 것은 인류세 기후위기의 희망이다. 복수의 사유가 가진 각각의 방향성으로 현재의 주도적 사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돌아볼 수 있게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근대 사유들의 연대도 요구되고 있다. 말과 생각과 실천을 장악하고 있는 기존 사유의 견고함을 고려할 때, 그것과 거리가 있는 생각의 방식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39~40쪽 탄소 문명은 탄소집착 문명이다. 우리들의 자동차가 움직이기까지, 이어져 있는 연결선들을 돌아보면 그 집착적 증후가 드러난다. 땅을 파고, 바다 밑 해저를 뚫어서, 해양오염을 무릅쓰고 유조선을 띄우며, 토양오염의 위험에도 송유관을 깔아서 기어이 석유를 가져온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쇼크(오일쇼크)도 감내하고, 전쟁(걸프전쟁)도 불사한다. 그 집착은 원유를 뒤집어쓴 물새로 상징되는, 죽어가는 생명들을 못 본 체하게 한다. -51쪽 지금의 탄소집착 문명의 시대는 분열적 시대다. 세상은 여전히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발전하는데, 기후위기로 인해 사는 것은 더 힘들어진다. AI는 점점 사람 같아지고 무인자동차는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는데, 기록을 경신하는 고온과 극한의 가뭄, 집중호우의 상황은 뉴노멀이 되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마치 영화 속 장면들이 실현된 듯한데, 여름은 너무 덥다. -53쪽 이처럼 자연의 순환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인류세의 증거다. 인류세는 쓰레기가 증언하는, 쓰레기의 시대다. 집착은 과잉을 낳고, 과잉은 쓰레기를 양산한다. 자연의 분해 흡수 능력이 마비되도록, 그리하여 지층에 시대의 증거가 남을 정도로, 쓰레기가 차고 넘치는 시대가 인류세다. -55쪽 하지만 기후위기는 없다. 지금의 ‘위기’에도 우리의 행동은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일상으로 접하지만, 일상적 행동에서 기후위기 없는 행동을 한다. 말보다 더 강력한 행동으로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의 와중에 기후위기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위기에 응대해야 할 일들이 생략되고, 기후위기 시대 다음으로 바로 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인류의 행동 속에서 기후위기는 위기라고 명명할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70~71쪽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 네이처가 자연으로 번역된 것은 단순 번역이 아니다. 존재들이 의지해야 하는 본디의 이치를 환기하려는 자연(自然)과 저기 바깥에 있는 자연(nature)은 질적으로 다른 내용을 가진다. 다른 층위의 의미를 가진 말들이다. 이것은 사과-애플(apple)과 같이 등가의 무엇을 상정한 번역이 아니다. 오히려 전에 없는 대상이 이입(移入)되는 사건이다. 인간 바깥에 대상화할 수 있는, 그리고 이용 가능한 자연이 동아시아에서 대두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동아시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각과 기표의 영토가 만들어지는 역사의 장면이다. -104쪽 도시에 공원도 있지만, 자연과 인간의 분리가 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원과 비공원이 구획되면서 그 분리는 강화된다. 공원은 자연을 재현하려 하지만, 도시의 일부로서의 재현이다.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진 도시의 공원도 있지만, 그 호수는 곧잘 ‘인공’호다. 공원뿐만 아니라, 도시에는 곳곳에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 분리의 표식이 있다. 가로수에도 테두리가 처져 있어서 그 두 영역을 경계 짓는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가로수의 냄새 나는 열매가 인간의 영역에 떨어지지 않게 망을 설치하기도 한다. -121쪽 지금 목도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문제들은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 인간(사회)-기후(자연), 기후(자연)-인간(사회)의 연결고리가 강화됨을 보여준다. 인류세를 인지하기 이전까지 우리가 관념화하고, 실천해온 분리 분절의 틀이 더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지금의 기후위기가 뼈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위기를 지속하게 하는 이유의 기저에 놓여 있는 이 이분법적 생각과 그에 의지한 행위가 철저히 재고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164~165쪽 이분법적 자연의 관점 위에 근현대 인류가 동의하고 실천한 근대성이 연결되어 있고, 그 위에 엄청난 무게의 근현대 문명이 있고, 그 문명을 회전시키기 위해 석탄, 석유, 가스를 태우고 폭발시켜 왔다. 이 합의와 행위와 투기(投棄)가 모여 인간은 이제 지구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가 되었다. 그 역사에 큰 획을 그어 인류세라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세는 근현대 문명이 쓰레기로 기록하는 시대다. 그 기록에 섭씨 1.5도 상승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지금 기입되려고 한다. 이것은 인류세의 지구사에 인간이 만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게의 흔적이다. 분해흡수를 못 하는 쓰레기는 무거워지고, 지구의 온도는 올라간다. -158쪽 ‘선진국’의 기준 자체가 탄소배출과 관련이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대량생산하며, 대량소비하는, 또한 플라스틱도 열심히 투기하는 것이 ‘선진국’이다. ‘선진국’의 개념부터 바뀌어야 한다. 기후 문제의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은 잘 사는 국가가 아니라, 잘못 사는 나라다(띄어쓰기 주의). 과도한 탄소배출의 문제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선진국’은 인류세 시대의 가해 국가다. 홍수, 가뭄, 화재 등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생각할 때 범죄 국가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177쪽 기후위기를 단지 인간의 활동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쓰레기 버릴 결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탄소, 플라스틱, 의류 폐기물 등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각, 행동, 언어가 중요하다. 지구의 온도를 들어 올릴 정도로 나도 버리고 너도 버리고 브라질 사람도 버리고 중국 사람도 버리고 영국 사람도 모두 버릴 결심을 하게 하는 이 쓰레기 투기 문명이 핵심적이다. -187쪽 인간중심주의는 단지 ‘주의(主義)’가 아니다. 말뿐이지 않다. 생명과 생명, 아니 대상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실제화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중심주의는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도시와 비도시의 관계는 인간중심주의를 형상화하고, 가시화한다. 인간이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그 바깥에 닭고기를 생산하는 축사가 있고, 또한 먹고 남은 닭뼈를 버릴 쓰레기장이 배치된다(닭뼈는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주의’에는 ‘굳게 지키는 주장’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인간중심주의는 단지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가 형상화된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197쪽 몸은 특히 기후위기 시대의 세계함을 중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점이다. 인간 몸은 비인간과 연루되는 몸이다. 쌀, 시금치, 돼지고기를 먹어서 몸을 만들고, 기운을 차리고, 활동을 한다. 먹기와 함께 입기도 몸의 중요한 행위다. 이것은 몸을 연장해서 몸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목화, 거위털, 소가죽을 연결하여, 또한 폴리에스터 같은 비생물 존재를 연결하여 바지를 입고, 티셔츠를 착용하고, 롱패딩을 걸친다. 몸을 적절한 생활환경에 노출시키기 위한(따뜻하게 보일러도 때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트는 행위까지 포함하여) 기거도 몸과 관련된 중요한 활동이다. -201~202쪽 일상의 배출이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일상의 문제를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에 틀 지워진 분리 분절의 방식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가 안녕하지 않으면 몸도 안녕하지 않다. 우리는 “기후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 몸과 기후를 함께 말하는 어법이 필요하다. 이미 기후에 몸을 말할 수도 있고, 날씨 기후를 말할 수도 있는 넘나듦이 있으므로, 우리는 기후를 중의적으로 말할 수 있다. 기후 안녕하십니까? 기후가 제한된 가변성 안에 있어야, 몸도 극단을 치닫지 않는다. -228쪽 쓰레기통 앞에서 머뭇거리기는,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미리 생각하는 머뭇거림을 포함한다. 물건을 살 때부터 무엇을 투기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이미 버릴 것을 예비하는 것이다. 테이크아웃하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는 것은 플라스틱 컵, 뚜껑과 빨대 그리고 종이 컵홀더를 버리는 것을 준비하는 일이다. 물건을 살 때부터 버려질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인류세, 즉 쓰레기의 시대다. 쓰레기통 앞에서 제대로 머뭇거리기 위해서는 살 때부터 머뭇거림이 필요하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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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건축을 추구한 빛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 “우리는 자유로운 공기와 충만한 빛에 대한 심미안을 갖게 됐다.” 자연광에 주목해 친환경 건축을 추구한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그의 건축 세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다! 이관석 지음 | 152×225 | 192쪽 | 무선 | 18,000원 2024년 7월 15일 | ISBN 978-89-8222-777-6 (93540) 20세기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작품을 다룬 책은 적잖지만, 르코르뷔지에가 자연광을 통해 친환경 건축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은 사용자의 위생과 환경을 고려해 자연광을 활용한 르코르뷔지에의 자연 친화적 건축을 집중 조명한 최초의 책이다. 삼성건설에 재직하며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다양한 건설 경험을 쌓고, 르코르뷔지에의 정신을 이어받은 앙리 시리아니 교수 밑에서 수학한 르코르뷔지에 전문가 이관석 경희대 교수는 르코르뷔지에 건축에 나타나는 자연광을 통한 건축의 의도와 성과, 친환경 건축의 의미를 살펴본다. 저자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서 자연광이 단순히 특정 장소를 밝히는 일차적 기능을 넘어서 사용자의 위생을 중시했음을 밝히며, 공간적, 상징적으로도 큰 의미와 효용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건축이 추구하는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건축을 그러한 인식조차 전혀 없었던 20세기 초에 이미 르코르뷔지에가 시도한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시각은 르코르뷔지에가 세운 중요한 건축 이론들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0세기 근대건축이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했다고 본 기존의 역사적 시각을 뒤집으며, 기후위기로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건축계에도 유효한 현대적 의의를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빛과 공간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그가 추구한 자연광과 친환경 건축을 조명한 최초의 책! 르코르뷔지에는 혁신적인 건축설계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론으로 건축사에 큰 업적을 남긴 현대 건축의 위대한 거장이다. 2016년에 그의 건축 작업 1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건축이 전 세계에 끼친 전파력이 컸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의 도래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후를 고려한 건축적 대응을 르코르뷔지에 같은 위대한 건축가가 정말로 등한시하거나 소홀하게 다루었을까?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이 비환경적으로 인식된 이유는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그의 상자형 백색 건축이 각 지역의 문화적, 기후적 산물인 지역건축을 경시했다는 지적과 함께 그의 도시계획 작업에 대한 논쟁이 편견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선입견에 가려져 있었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실은 누구보다 자연광을 통한 친환경 건축에 큰 관심을 둔 건축가였다. 오늘날의 건축이 추구하는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건축을 그러한 인식조차 전혀 없었던 20세기 초에 이미 르코르뷔지에가 시도하고 있었다. 19세기 말은 유럽 도시들이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 급증으로 그동안 풍족하게 누려온 신선한 공기와 풍성한 햇빛을 잃은 시기였다. 우후죽순 생겨난 공장으로 도시는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생긴 연기와 그을음, 어둡고 축축한 습기에 절어 있었다. 오염된 공기 속에서 자연광은 한껏 치장한 건축물의 사치스러운 표면을 조명하는 역할에 만족했다. 20세기 초 빛과 공간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이러한 과거 건축의 장식적 역할을 벗어나 근대건축의 추상성과 어우러져 서로의 속성을 부각하는 자연광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그의 건축에서 자연광과 어우러진 내부 공간은 후대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자연광과 지속가능성》은 건축의 핵심 재료인 자연광을 활용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세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한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적인 측면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지역의 기후와 문화를 등한시했다고 알려진 르코르뷔지에. 그가 실은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개념조차 없던 20세기 초중반에 그 안에 사는 인간을 배려한 여러 시도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밝힌 최초의 책이다. 르코르뷔지에의 정신을 이어받은 앙리 시리아니 교수 밑에서 수학한 르코르뷔지에 전문가 이관석 경희대 교수는 르코르뷔지에 건축에 나타나는 자연광을 통한 건축의 의도와 성과, 친환경 건축의 의미를 살펴본다. 저자는 그 근거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두 건축물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부속성당에 유입되는 자연광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또한 과다한 자연광이 문제가 되는 인도 등 더운 지역에서 르코르뷔지에가 작업한 건축물들이 구사한 해결책에 담긴 의도와 성과를 살펴본다. 형상과 공간 전체가 어우러져 건축적 감동을 전하는 ‘종합예술로서의 건축’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두 예배공간에 나타나는 자연광의 역할 르코르뷔지에는 가장 작은 거주지에서부터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건축에 자연과 지리뿐만 아니라 태양을 첫 조건으로 끌어들인 인물로,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빛의 역할과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준 건축가다. 그가 세운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의 자연광은 형태, 색채, 빛과 그림자, 시각적 음향까지 포함한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이다. 규모가 큼에도 두 예배공간에는 전기를 이용한 인공광 없이 제단 위의 촛불 외에는 자연광만으로 밝혀지게 계획됐다. 오늘날에는 최소한의 인공광이 추가되었지만, 여전히 자연광이 절대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광을 통한 공간 드러냄에 의지하는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은 형상과 공간 전체가 어우러져 건축적 감동을 전한다. 한편 자연광의 유입을 통제해야 하는 더운 대륙에서 르코르뷔지에는 냉방기 설치와 가동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여건과 부족한 예산에도 조형적 고품질을 잃지 않으면서 거주와 여가를 위한 터전으로 기능하는 건축을 성취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르코르뷔지에는 사용자의 위생과 편의를 위해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적절히 통제했으며, 인도의 상시적 무더위에 건축적으로 대응했다. 이외에도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작업은 빛만으로도 심도 있는 분석이 가능할 만큼 자연광의 높은 가치와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르코르뷔지에의 글과 건축 작업에서 드러나는 자연광에 대한 그의 각별한 인식의 바탕에 당시의 열악한 거주환경에서 사용자의 건강을 지키려는 건축가로서의 의무감이 줄곧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가 마주한, 건축에서의 자유로운 공기와 충만한 빛 자연광의 위상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건축계에 경종을 울리다 오늘날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와 맞물려 건축계의 친환경적 접근 방식에 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건물 내부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천연 난방, 냉방과 환기의 사용을 극대화하는 패시브 디자인에 관한 연구도 가속화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선언에 따라 신규 건축물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 추진과 아울러 기존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도 건축계의 눈앞에 닥친 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날의 건축이 추구하는 친환경 건축을 그러한 인식조차 전혀 없었던 20세기 초에 이미 르코르뷔지에가 시도하고 있었다. 그의 자연광을 통한 친환경 건축은 오늘날의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자연광의 중요성을 자각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담긴 자연광과 친환경적 특성에 주목한다. 기후에 대응한 지역적 적응성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과 자연광을 중시한 그가 불리한 기후조건에 건축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고찰한다. 르코르뷔지에가 자신의 건축에 적용한 브리즈 솔레이어나 그늘막 지붕, 실내의 복층화와 내부 비워냄을 통한 통풍 유발은 유엔환경계획이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우려해 요구하는, 저탄소 냉각 성장 방안 중 하나인 수동 냉방 조치와도 상통한다. 르코르뷔지에가 자연광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당시의 위생 환경 때문이었다. 르코르뷔지에는 사망 원인 1, 2위였던 독감과 결핵의 창궐에 건축과 도시가 아무런 대처를 못 하던 당시 상황을 직시하고, 빛이 풍부하고 환기가 잘 되는 주거환경을 꿈꾸었다. 르코르뷔지에는 세계 곳곳에 건물을 지으면서 태양의 열기가 문제가 되는 지역에 대한 대응법도 세웠다. 그는 건축과 도시에서 자연광의 가치와 환경에 대한 대응에 모범을 보이며, 당시 주민 수가 급증하면서 환경과 사회적으로 재앙을 맞은 파리 시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르코르뷔지에의 1920년대 건축 이론을 집약한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요점’을 통해 그가 위생과 직결된 환기와 빛을 도입한 이유를 살펴본다. 특히 고온다습해 기후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그가 구사한, 당시 건축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지속 가능하고 패시브한 친환경적 배려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150여 장의 풍부한 사진과 설명을 곁들여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에 나타나는 빛과 색의 향연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가 마주한, 건축에서의 자유로운 공기와 충만한 빛은 너무나 소중히 다뤄야 할 주제였다. 그에게 건축이란 시간과 중력, 공간, 빛 같은, 사물들의 질서를 조심스럽게 구축하는 보이지 않는 법칙을 표현하는 것이면서 그 안에 사는 소중한 인간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르코르뷔지에의 자연광에 대한 이해는 자연광의 위상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건축계에 경종을 울린다.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과 지구온난화로 고통받는 기후위기 시대에 친환경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시의적절한 책이다. 차례 프롤로그 Chapter 1 르코르뷔지에의 종교건축 예배공간에 유입된 자연광의 역할과 의미 자연광에 대한 르코르뷔지에의 인식 위생 차원에서의 자연광 건축의 기본으로서의 자연광 종교건축에서의 ‘감동으로서의 빛 르코르뷔지에의 종교건축 예배공간에 유입된 자연광 노출된 광원과 감춰진 광원 노출된 광원 / 감춰진 광원 색이 담긴 자연광 르코르뷔지에의 색 / 채색된 유리를 통과하는 빛 / 채색된 면에 반사되는 빛 빛과 공간의 조합 롱샹 성당의 빛, 다채로움과 평정의 조화 / 라투레트 수도원 부속성당의 빛, 고요 속에서의 생동 / 두 예배공간에서 자연광이 지닌 의미 Chapter 2 르코르뷔지에 건축에서의 지속가능성 면모와 그 의미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지속가능성 의도 다시 보기 르코르뷔지에 건축이 비환경적으로 인식된 이유 원죄 같은 현대도시 계획안들 / 모스크바와 파리에서의 시도와 실패 / ‘국제 양식’의 굴레 주거환경 개선의 관점으로 다시 본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요점’ 위생과 경제성을 고려한 ‘필로티’ / 일광욕을 위한 ‘옥상테라스’의 정원화로 인한 단열층 형성 / 더 나은 조망과 풍부한 채광을 위한 ‘수평창 ’ / 내부를 쉽게 비워낼 수 있게 한 ‘자유로운 평면’과 ‘자유로운 파사드’ 인간을 위한 건축과 도시계획 계속 진화하는 표준과 유형의 모색 / 건축과 도시에 인간을 반영한 모뒬로르 르코르뷔지에 건축에서의 지속가능성 배려 차양의 도입 브리즈 솔레이어의 발상 / 찬디가르 카피톨에서의 차양 / 카피톨 이외 인도에서의 차양 그늘막 지붕의 도입 실내의 복층화와 내부 비워냄을 통한 통풍 유발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의 기후 일람표와 수목 연구 효율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후 대응을 위한 기후 일람표 / 외부에서 태양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수목 연구 에필로그 주 참고 문헌 사진 출처 지은이_ 이관석 李官錫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종합건설에 재직하며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현장을 경험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 파리-벨빌건축학교에서 현존 건축가 중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정신에 가장 정통한 앙리 시리아니의 지도로 건축설계를 연구했고, 파리1-판테온소르본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근현대 건축사와 뮤지엄 건축을 연구했다.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가이자 예술사학 박사로서 현재는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르코르뷔지에와 현대 뮤지엄 건축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빛을 따라 건축적 산책을 떠나다》, 《한국현대건축편력》, 《르코르뷔지에, 근대건축의 거장》, 《건축, 르코르뷔지에의 정의》, 《빛과 공간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현대 뮤지엄 건축》,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수업》, 《뮤지엄, 공간의 탐구》, 《역사와 현대 건축의 만남》 등이 있으며, 역서로 《건축을 향하여》, 《프레시지옹》, 《오늘날의 장식예술》, 《느림의 건축을 위하여》, 《작은 집》, 《대성당들이 희었을 때》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건축은 “비가 개면 나타나는 일곱 색깔 무지개”라는 노랫말처럼 스스로 일곱 가지 색으로 분해되는, 살아 있어 움직이는 빛에 의지한다. 화가가 붓 터치로 그림을 드러내듯 건축가는 빛의 모습을 그린다. 건축을 얼어붙은, 화석화된 음악이라고 말한 괴테는 건축의 최초 질료인 빛에 의해 연주되는 건축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시간을 보여주는 빛의 여정은 시간의 흐름이 천천히 투영되는 해시계인 건축에 새겨진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나타나는 자연적 언어는 건축적 의미를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36쪽 우리는 전기를 이용한 인공광에서 사용 목적과 환경에 따라 선택되는 직접조명과 간접조명이 서로 다른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냄을 익히 알고 있다. 직접조명은 대상에 직접 빛을 쏘아서 대상의 형태를 밝히 드러내는 반면에 간접조명은 주변 환경이나 다른 표면을 통해 빛이 퍼져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조명 효과를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자연광도 광원의 노출 여부에 따라 느껴지는 감흥은 사뭇 다르다. 르코르뷔지에가 구사한 자연광의 대표적 사례로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부속성당에 유입된 빛에 주목하면서 굳이 광원을 먼저 거론하는 것은 빛이 그 자리에 그렇게 유입된 이유와 의미가 그것의 노출 여부에 따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44쪽 르코르뷔지에가 제안한 예배공간이 색을 담은 빛의 향연이 된 것은 그가 빛이 유입되는 곳에만 집중적으로 색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빛과 색이 동행한다는 말이다. 빛은 색채를 탄생시킨다. 색은 자유로운 빛에서 나온다. 어둠 속의 색은 의미가 없다. 르코르뷔지에의 예배공간에서 빛이 색과 함께하는 방식은 적절하게 양이 통제된 빛의 가치를 높여주면서 특정한 지점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내부 공간의 거친 마감을 잊게 하면서 생기를 부여한다. ―66~67쪽 고전에 대한 호감에 참신함을 접목함으로써 과거의 양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행해지던 중에 프랑스 가톨릭과 현대 예술의 만남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아 르코르뷔지에를 설득해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설계를 맡긴 이가 바로 쿠튀리에 신부였다. 쿠튀리에 신부는 “우리와 신앙이 다른 예술가들이 우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들의 창작을 통해 우리는 500년 동안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위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르코르뷔지에를 시종일관 옹호했고, 그 결실이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이다. ―72쪽 광원이 노출된 빛 대부분은 인공조명이 없어 어두운 예배공간의 상부나 제단의 뒤편을 밝히는 조명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내부의 역동성 같은 공간적 특질을 빛으로 살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롱샹 성당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보이는 남측 벽의 개구부를 통해 유입되는 이례적인 빛은, 빛 물감으로 그린 화폭처럼, 광원이 노출됐으면서도 순례자 성당의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를 고양한다. 반면에 광원이 감춰진 빛들은 두 곳 모두에서 안정적이고 신성하면서 내향적인 분위기의 공간을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88쪽 당시에 여전히 있었던 하인 계급이나 도시 하층민들이 지붕이 경사진 탓에 층고가 낮고 좁은 꼭대기 층의 고미 다락방에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게 거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이유도 르코르뷔지에의 평지붕 도입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당시 파리에 여전히 존재했던, 하인을 부리는 역사가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확신했다. ―109쪽 르코르뷔지에의 거절로 인해 인도 대표단은 근대건축국제회의의 다른 회원인 영국 건축가 드류를 찾아갔다. 자신이 동조하는 근대건축의 리더인 르코르뷔지에가 이 작업을 사양했다는 것을 듣고 르코르뷔지에가 동참해야 자신도 이 일에 개입할 것이라는 드류의 대답을 들은 인도 대표단은 다시 르코르뷔지에를 찾아가 드류와 동역한다는 조건으로 승낙을 받았다. 르코르뷔지에는 돈벌이보다는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것에만 행복이, 호사롭거나 허영에 찬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고, 앞서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앞서 알기 힘든 것들을 파악하고 숙고해야 하는 헌신과 경험, 그리고 매일의 삶으로부터 얻어지는 바를 느끼고 알아차리는 일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125~126쪽 1950년에 시작된 르코르뷔지에와 인도의 인연은 그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기후적 불리함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가져다줬다. 그가 다수의 건물을 계획해야 했던 찬디가르나 역대 최고기온이 44.4°C로 5월의 월평균 최고기온이 42°C에 달하는 아마다바드의 열기를 식혀줄 대용량의 공조설비를 설치하고 운용할 수 없는 여건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1902년 7월 17일 뉴욕 브루클린의 한 인쇄소에서 젊은 기사가 환풍구와 난방장치를 뜯어고쳐 온도와 습도를 떨어뜨린 것을 효시로 현대식 에어컨이 출발해 미국에서는 1920년대에 이미 백화점과 극장에,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개인 주택에까지 에어컨이 널리 보급되었다. 하지만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지 3년밖에 안 된 1950년의 인도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133~134쪽 르코르뷔지에는 이 책에 수록된, 자연광을 소중히 여기는 언급들과 함께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빛의 역할과 의미가 어떠한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가 경력 후기에 설계한 롱샹 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 부속성당은 눈길을 끄는 조형성과 상자형의 단순함이라는 외관과 내부 공간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형언 불가의 공간’으로 인정받을 만큼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공간적 감동을 자연광의 도움을 받으며 연출했다. 이 두 사례 이외에도 르코르뷔지에의 각 건축 작업은 빛만으로도 심도 있는 분석이 가능할 만큼 자연광의 높은 가치와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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